캠핑카 히터 고장으로 하루를 통째로 잃어버린 6일 차. 그냥 보내기 아까워 부지런히 남쪽으로 달려 늦은 오후에 도착한 곳이 몬터레이 베이였습니다. 원래 7일 차에 예정되어 있던 일정을 하루 앞당긴 것이었는데, 그 덕분에 여행 전체에서 손꼽히는 하루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LA 산불 — 계획을 통째로 바꾼 하루
사실 이날 오전은 정신없이 바빴습니다. 캠핑카 수리를 위해 엘몬테 산타크루즈 지점을 방문하고, 부품 입고가 다음날로 미뤄지면서 하루를 더 묵어야 하는 상황이 확정됐습니다. 그리고 같은 날, 더 큰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당시 로스앤젤레스에서 대형 산불이 빠르게 번지고 있었습니다. 저희 일정에는 캘리포니아 1번 국도를 따라 피스모 비치와 산타바바라를 거쳐 LA로 이동한 뒤 유니버셜 스튜디오를 방문하는 계획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한국에서부터 관련 영화를 정주행 하며 손꼽아 기다리던 일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안전을 최우선으로 판단해 LA 관련 일정을 전면 취소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미리 예약하고 결제까지 마쳤던 LA 인근 캠핑장과 유니버셜 스튜디오 티켓은 산불이라는 재난 상황을 이유로 전액 환불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실망이 컸지만, 플로리다 올랜도의 디즈니월드가 남아 있다는 말로 달랬습니다.
캐너리 로우 — 정어리 공장에서 관광 명소로
어려운 결정을 마무리하고 남쪽으로 달려 도착한 몬터레이는 캘리포니아 중부 해안에 자리한 역사적인 항구 도시입니다. 1770년 스페인 선교사들에 의해 건설된 이 도시는 캘리포니아의 초대 주도였으며, 현재는 해양 생물학 연구의 중심지이자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발전했습니다.
몬터레이의 핵심 거리인 캐너리 로우(Cannery Row)는 20세기 초까지 정어리 통조림 공장들이 밀집해 있던 해안가 거리입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존 스타인벡의 소설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진 이곳은 지금은 기념품 상점과 해산물 레스토랑, 갤러리가 즐비한 매력적인 관광 거리로 탈바꿈했습니다. 거리 중간에는 존 스타인벡의 흉상이 세워져 있어 문학적 역사도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이날 처음으로 페니 프레스(Penny Press)를 경험했습니다. 1센트 동전을 기계에 넣고 압착해 관광지 로고가 새겨진 기념 동전으로 만드는 것인데, 이날 이후 여행 내내 관광지마다 페니 프레스를 찾아 모으는 것이 아이들의 새로운 여행 루틴이 됐습니다. 비용도 거의 들지 않고 각 지역의 특색이 담긴 기념품을 직접 만든다는 점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에서 적극 추천하는 활동입니다.

몬터레이 베이 아쿠아리움 — 도리를 찾아서의 실제 배경
몬터레이를 꼭 방문하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몬터레이 베이 아쿠아리움(Monterey Bay Aquarium)이었습니다. 1984년 개관한 이 수족관은 픽사 애니메이션 <도리를 찾아서>의 실제 배경이 된 곳으로 유명합니다. 제작진이 이곳에서 자료 조사를 하고 애니메이션 배경을 만들었으며, 영화 속 해달 장면도 이곳의 해달을 모티브로 했습니다. 영화 속 문어 캐릭터 '행크'를 탄생시키기 위해 이곳과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 과학 아카데미에서 2년에 걸쳐 문어를 연구했다는 이야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입장하자마자 해설사가 아이들에게 먼저 다가와 작고 투명한 해파리를 직접 보여주며 설명을 해주는 것부터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The Open Sea 구역에서는 상어와 참치, 가오리 등 대형 해양 동물이 가득한 초대형 수조를 만날 수 있었고, 군무를 이루는 물고기 떼는 컴퓨터 그래픽인가 싶을 정도로 황홀했습니다.
아이들이 가장 오래 머문 곳은 Splash Zone이었습니다. 0~12세 아동을 대상으로 한 체험 공간으로, 산호초와 켈프 숲 등 다양한 해양 서식지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영화 속 니모(흰동가리)와 도리(블루탱)가 말미잘 속에서 헤엄치는 모습을 실제로 볼 수 있는 수조 앞에서 아이들이 떠날 줄을 몰랐습니다. 해달은 둘째와 셋째가 한동안 인형을 사달라고 조를 정도로 귀여웠습니다. 입장료는 성인 기준 $50 내외이며, 사전 온라인 예약 시 할인 혜택이 있습니다.

KOA 늦은 체크인 — 모스랜딩 캠핑장
몬터레이 관람을 마치고 다시 북쪽으로 이동해 산타크루즈 방향으로 올라가다가 중간 지점인 모스랜딩(Moss Landing)의 KOA 캠핑장을 급하게 예약해 늦은 밤에 도착했습니다. 직원은 이미 퇴근한 시간이었지만, 저희 사이트 번호와 샤워장·세탁실 비밀번호가 적힌 메모가 붙어 있어 불편함 없이 체크인할 수 있었습니다. KOA 캠핑장 대부분이 이런 방식으로 늦은 체크인을 지원하고 있어, 이동 시간이 불규칙한 캠핑카 여행에서 큰 장점입니다.
모스랜딩 KOA는 부두 바로 앞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캠핑카 창문 너머로 밤새 바다사자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요세미티 첫날밤의 혹독한 추위, 히터 고장, LA 일정 전면 취소까지 파란만장했던 6일 차였지만, 바다사자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들던 그 밤은 지금도 기억에 남습니다.

몬터레이 베이 아쿠아리움 방문 정보
몬터레이 베이 아쿠아리움은 캐너리 로우 886번지에 위치하며, 연중무휴 운영됩니다. 입장권은 공식 홈페이지(montereybayaquarium.org)에서 사전 예약하면 현장 구매보다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으며, 날짜와 시간대를 지정해 입장하는 방식입니다. 주차는 캐너리 로우 인근 유료 주차장을 이용하거나, 몬터레이 시내에서 도보 이동도 가능합니다. 캠핑카처럼 대형 차량은 인근 대형 주차 공간을 미리 확인하고 방문하는 것을 권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