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세미티 국립공원에서 난방도 안 되는 캠핑카로 혹독한 첫날밤을 보내고, 다음 목적지인 산타크루즈로 이동했습니다. 185마일(약 297km)을 달려 늦은 밤에야 도착한 곳은 '산타크루즈/몬터레이베이 KOA 홀리데이' 캠핑장이었습니다. 캠핑카 여행을 시작한 이후 전기·수도·오수 연결이 모두 가능한 Full Hook-up 사이트를 이용하는 건 이날이 처음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대했던 따뜻한 밤은 이날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산타크루즈 KOA — Full Hook-up 첫 사이트
배정받은 사이트는 101번으로, 파쇄석 바닥에 타일 파티오와 야외 테이블이 갖춰진 곳이었습니다. 화덕(Fire Pit)도 설치되어 있었고, 캠핑 사이트 바로 앞에는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도 있었습니다. KOA 캠핑장에 처음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조경 관리 상태였습니다. 1월임에도 불구하고 캠핑장 전체가 푸르게 잘 관리되고 있었고, 전반적인 시설 수준이 높아 첫인상부터 안심이 됐습니다.
KOA(Kampgrounds of America)는 미국 전역에 500개 이상의 캠핑장을 운영하는 민간 캠핑장 체인으로, 지점마다 시설 수준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이곳 산타크루즈 지점도 에어바운스, 돔형 놀이 시설, 캐빈형 숙소까지 갖추고 있어 아이 셋을 데리고 온 저희에게는 최적의 환경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아침 일찍부터 놀이터와 에어바운스를 오가며 신나게 뛰어놀았고, 덕분에 어른들은 잠시 여유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날 처음으로 KOA가 왜 장기 캠핑카 여행자들 사이에서 신뢰받는 곳인지 실감했습니다.

또 꺼진 히터 — 매뉴얼을 꺼내 들다
전기 연결이 되는 Full Hook-up 사이트였으니 이날 밤만큼은 따뜻하게 잘 수 있을 거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밤사이 히터가 또 꺼졌습니다. 요세미티에서와 똑같은 상황이었습니다. 프로판 가스는 충분했고 캠핑장 전기도 연결된 상태였는데 왜 히터가 꺼지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두툼한 영문 캠핑카 매뉴얼을 꺼내 히터 관련 항목을 꼼꼼히 읽어봤습니다. 48페이지에는 히터(Furnace) 작동에 프로판 가스와 배터리 전원 공급이 모두 필요하다고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49페이지에는 캠핑장 외부 전원으로도 작동 가능하다는 내용이 추가로 적혀 있었는데, 실제로 확인된 작동 원리는 달랐습니다. 캠핑장 외부 전원은 히터를 직접 구동하는 것이 아니라, 배터리를 충전시키고 그 배터리로 히터가 작동하는 구조였습니다. 즉 배터리 충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히터는 결국 꺼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엘몬테 긴급 콜센터 연락 — 배터리인가, 아닌가
아침 일찍 엘몬테 긴급 콜센터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콜센터 측은 인근 자동차 부품점(Auto Parts)에서 배터리 상태를 먼저 점검해 보라고 안내했고, 가까운 NAPA Auto Parts 매장을 찾아갔습니다. 배터리 점검은 무료로 진행됐는데 결과는 배터리 이상 없음이었습니다. 원점으로 돌아간 셈이었습니다.
다시 엘몬테 콜센터에 연락해 강력하게 수리 또는 차량 교체를 요청했습니다. 저희는 46일간의 캠핑장을 모두 사전 예약해 둔 상태였기 때문에 하루라도 일정이 틀어지면 수십 곳의 예약을 연쇄적으로 수정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콜센터 측은 인근 스콧츠밸리(Scotts Valley)에 위치한 엘몬테 산타크루즈 지점을 방문해 수리 가능 여부를 확인해 보라고 안내했습니다.

엘몬테 산타크루즈 지점 — 드디어 원인을 찾다
산타크루즈 지점은 규모는 작았지만 캠핑카 수리 시설과 전담 엔지니어를 갖춘 곳이었습니다. 엔지니어가 퓨즈 박스를 열어 한두 시간에 걸쳐 이것저것 점검한 끝에 원인을 찾았습니다. 캠핑장 외부 전원을 연결했을 때 그 전력을 배터리에 충전시켜 주는 특정 부품이 고장 난 것이었습니다. 충전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시동을 끄는 순간부터 배터리가 소모되기 시작하고, 한밤중에 배터리가 모두 방전되면서 히터가 꺼지는 것이었습니다. 요세미티에서의 첫날밤부터 이날까지 이틀 내내 추위에 떨었던 원인이 드디어 밝혀진 순간이었습니다.
같은 규격의 대체 차량이 지점에 없어 차량 교체는 불가했고, 결국 부품 교체 수리를 하루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엘몬테 측은 이로 인해 발생한 하루 일정 손실과 캠핑장 예약 손해에 대해 추후 보상을 약속했고, 통화 내용을 녹취해 두었습니다. 수리가 진행되는 동안 아이들은 캠핑카 안에서 보드게임을 하고 간식을 먹으며 기다렸습니다. 길고 지루한 하루였지만, 아이들은 그 안에서도 해맑게 잘 놀았습니다. 오후에는 당초 다음날 예정이었던 몬터레이 관광을 앞당겨 다녀오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캠핑카 트러블, 이렇게 대처하세요
이 경험을 통해 장기 캠핑카 여행에서 차량 트러블 대처 방법에 대해 몇 가지를 배웠습니다. 우선 렌트사 긴급 콜센터 번호는 출발 전 반드시 저장해두고, 트러블 발생 시 모든 통화 내용을 녹취해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수리 또는 차량 교체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 보상은 구두 약속만으로는 부족하며, 통화 녹취나 서면 확인이 필요합니다. 또한 All campsite reservations이 사전 예약된 장기 여행일수록 하루 일정이 틀어졌을 때의 파장이 크기 때문에, 일정 여유분을 최소 2~3일 확보해 두는 것이 현명합니다. 캠핑카 인수 당일 히터 작동 여부와 배터리 충전 상태를 직접 확인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