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3일간의 호텔 생활을 마치고 드디어 캠핑카를 인수하는 날이 왔습니다. 46일간 우리 가족의 집이 될 캠핑카를 처음 만나는 날. 설레야 정상이었는데, 막상 그날은 설렘보다 체력 고갈과 긴장감이 훨씬 앞섰습니다.
더블린역에서 엘몬테 지점까지 — 지도에서는 20분이었다
엘몬테RV 샌프란시스코 지점은 샌프란시스코 도심이 아닌 동쪽 교외 도시인 더블린(Dublin)에 위치해 있습니다. BART를 타고 더블린역에 내린 뒤 지점까지 이동해야 했는데, 지도상 거리로는 도보 약 20분이었습니다. 캐리어와 짐가방 9개를 끌고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택시를 부르기엔 애매한 거리였고 버스 노선도 마땅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걷기 시작하니 상황이 달랐습니다. 길 중간 절반 이상이 육교였고,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됐습니다. 캐리어를 끌고 육교 계단을 올라갔다가 내려오고, 또 올라갔다가 내려오기를 반복했습니다. 내려올 때는 무거운 짐이 굴러 내려가지 않도록 온몸으로 잡으면서 이동해야 했습니다. 다섯 식구 모두 지점에 도착하자마자 소파에 그대로 쓰러졌습니다. 엘몬테 지점 방문 시에는 짐이 많다면 더블린역에서 우버를 이용하는 것을 강력히 권장합니다.

인수 절차 — 영어로 쏟아지는 설명들
아이들이 소파에 뻗어있는 동안 저와 남편은 캠핑카 인수 절차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사무실에서 예약 내용 확인, 보험 조건 설명, 서류 서명 등의 행정 절차가 진행됩니다. 담당 직원이 보험 항목을 하나씩 설명해 주는데, 풀커버 보험이라도 차량 하부 손상은 보장 범위에서 제외된다는 내용이 귀에 꽂혔습니다. 나중에 실제로 그 상황을 겪게 될 줄은 그때는 몰랐습니다.
서류 절차가 끝나면 직원과 함께 실제 차량으로 이동해 차량 상태 확인과 작동 방법 설명이 이어집니다. 차량 내·외부 기존 흠집 확인, 각 공간의 용도 설명, 전기·수도·오수 연결 방법, 슬라이드 아웃 작동법, 발전기 사용법 등 설명해야 할 항목이 상당합니다. 모두 영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놓치는 내용이 생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희는 설명 전 과정을 스마트폰으로 영상 촬영해 뒀고, 이후 캠핑카 생활을 시작한 뒤에도 영상을 반복해서 돌려보며 작동 방법을 확인했습니다. 캠핑카 인수 시 영상 촬영은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유럽식 카라반과 미국식 캠핑카의 차이
국내에서 유럽식 카라반을 직접 소유하고 사용해온 터라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식 캠핑카는 구조 자체가 달랐습니다. 유럽식 카라반은 차량이 카라반을 견인하는 방식이지만, 미국식 캠핑카(모터홈)는 운전석과 생활공간이 하나로 통합된 구조입니다. 전기·수도·오수 연결 방식도 완전히 달랐고, 슬라이드 아웃처럼 한국 캠핑카에는 없는 구조도 있어 처음에는 개념 자체가 낯설었습니다.
미국식 캠핑카의 오수 시스템은 블랙워터 탱크(화장실 오수)와 그레이워터 탱크(싱크대·샤워 오수)로 구분됩니다. 캠핑장에서 Full Hook-up 사이트를 이용하면 호스를 연결해 오수를 직접 배출할 수 있고, Hook-up이 없는 사이트에서는 탱크가 가득 차기 전에 덤프 스테이션(Dump Station)을 찾아 비워야 합니다. 수도 연결도 캠핑장 수압에 맞게 압력 조절기(Water Pressure Regulator)를 사용하는 것이 권장되는데, 이런 세부 사항들을 인수 당일 한꺼번에 소화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캠핑카 인수 당일 월마트 장보기 — 첫 운전의 공포
캠핑카 인수가 마무리된 시각이 오후 2~3시였습니다. 그날 목적지는 요세미티 국립공원이었는데, 캠핑카 안에는 먹을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요세미티에 들어가면 마트 접근이 어렵기 때문에 출발 전 장보기가 필수였습니다. 결국 인근 월마트로 향했습니다.
생전 처음 운전하는 25ft짜리 대형 캠핑카를 몰고 월마트 주차장에 진입하는 순간은 지금도 아찔합니다. 일반 승용차와는 차원이 다른 차체 길이와 높이, 사각지대까지 신경 쓰며 주차하는 데만도 한참이 걸렸습니다. 장을 마치고 요세미티로 출발했을 때는 이미 늦은 오후였고, 아침 이후 점심과 저녁을 거른 채 요세미티까지 이동해야 했습니다. 캠핑카 인수일에는 이동 목적지를 가급적 가깝게 잡거나, 인수 후 지점 근처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 본격적인 이동을 시작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입니다. 첫날부터 장거리 이동 일정을 잡는 것은 체력적으로도, 운전 적응 면에서도 무리였습니다.
캠핑카 인수일, 이것만은 미리 준비하세요
직접 겪으면서 파악한 캠핑카 인수일 준비 사항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지점까지 이동 수단을 사전에 확인해 두어야 하며, 짐이 많다면 우버 이용을 처음부터 계획에 포함하는 것이 좋습니다. 인수 설명은 전 과정을 영상으로 촬영해두고, 이해가 안 된 부분은 현장에서 바로 재질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수 당일 첫 이동 목적지는 가능하면 1~2시간 이내 거리로 잡고, 출발 전 기본 식료품 장보기 시간을 일정에 반드시 포함해야 합니다. 차량 인수 전 기존 흠집은 직원과 함께 꼼꼼히 확인하고 사진으로도 기록해 두는 것이 반납 시 분쟁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