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서클 국립공원 투어의 거점으로 삼은 곳은 애리조나 주의 작은 도시 페이지(Page)였습니다. 자이언, 브라이스캐니언, 앤털로프 캐니언, 홀슈밴드, 그랜드캐니언까지 지도상 중심부에 위치해 있어, 매일 이곳에서 출발해 각 국립공원을 다녀오는 베이스캠프 방식으로 그랜드서클을 돌기로 했습니다. 겨울철 국립공원 인근 캠핑장 대부분이 상하수도 시설을 운영하지 않거나 아예 폐쇄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시설이 갖춰진 페이지 캠핑장에 캠핑카를 두고 하루씩 당일치기로 움직이는 방식이 최선이었습니다.
와윕 베이 — 사막 한가운데 오아시스
첫 번째로 향한 곳은 페이지 인근의 와윕(Wahweap)이었습니다. 콜로라도 강 상류에 건설된 글렌 캐년 댐으로 인해 형성된 대형 인공호수 레이크 파웰(Lake Powell) 주변에 자리한 만(Bay)으로, 지인에게 강력 추천을 받은 곳이었습니다. 막상 도착하니 왜 추천했는지 단번에 이해가 됐습니다. 붉은 사암 절벽과 민물 호수가 만드는 풍경이 사막 한가운데 오아시스 같았습니다. 납작하게 깎인 절벽 위로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이 펼쳐지고, 그 풍경이 잔잔한 호수에 그대로 비치는 장면은 한 장의 그림 같았습니다. 와윕 마리나(Wahweap Marina) 항구에는 많은 요트가 정박해 있었고, 수영 스팟과 캠핑장 등 다양한 레저 시설도 갖춰져 있었습니다. 겨울 비수기라 한적했지만, 여름에는 호화 보트를 빌려 수영과 낚시를 즐기는 관광객들로 가득 찬다고 합니다.

글렌 캐년 댐 — 콜로라도 강의 시작점
와윕에서 나와 글렌 캐년 댐(Glen Canyon Dam) 방문자 센터를 찾았습니다. 글렌 캐년 댐은 1956년부터 1966년까지 미국 매립청(Bureau of Reclamation)에 의해 건설된 높이 220m의 콘크리트 아치 중력 댐입니다. 콜로라도 강 상류에 세워져 미국 최대 규모 인공호수 중 하나인 레이크 파웰을 만들었으며, 저장 용량은 약 31㎦에 달합니다. 8개의 발전기를 통해 연간 약 50억 킬로와트시의 전력을 생산해 미국 서부 7개 주에 공급하고 있습니다.
댐 이름은 댐 건설로 수몰된 협곡인 글렌 캐년(Glen Canyon)에서 따왔으며, 레이크 파웰은 1869년 콜로라도 강 그랜드캐니언 구간을 최초로 보트로 횡단한 탐험가 존 웨슬리 파웰(John Wesley Powell)의 이름을 따서 명명됐습니다. 방문자 센터에서 댐의 역사를 살펴본 뒤 글렌 캐년 댐 전망대(Glen Canyon Dam Overlook)로 이동했습니다. 댐 남쪽 공용 주차장에서 무료 주차 후 걸어 내려가면 협곡과 어우러진 댐의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습니다. 댐 아래로 흘러내려가는 콜로라도 강의 짙은 초록빛 물색과 붉은 협곡의 대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평생 콜로라도 강 최상류에 서보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막상 그 자리에 서 있으니 가슴이 울컥했습니다.
홀슈밴드 — 말발굽 모양의 협곡
글렌 캐년 댐 전망대에서 차로 13분 거리에 홀슈밴드(Horseshoe Bend)가 있습니다. 콜로라도 강이 협곡 사이를 말발굽 모양으로 굽이쳐 흐르는 지형에서 이름이 붙었습니다. 주차장에서 뷰포인트까지는 붉은 지층 위 산책로를 따라 걸어야 합니다. 바위 위에 흙과 모래가 깔려 있어 미끄러울 수 있으므로 정해진 산책로를 따라 이동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특히 아이들은 반드시 어른과 함께 이동해야 합니다.
뷰포인트에 도착한 순간, 사진으로 수없이 봤던 그 풍경이 실제로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아무런 안전 펜스 없이 절벽 끝에 서야 전체 풍경이 담기는 구조라, 절벽 높이가 워낙 높고 가팔라 가까이 다가가는 것 자체가 무서웠습니다. 엄마와 큰아들은 거의 기어가다시피 절벽 끝에서 사진을 남겼고, 어린 두 아이는 안전을 위해 뒤에서 기다렸습니다. 뒤에서 기다리는 동안 두 꼬맹이는 주니어레인저 놀이에 빠져 절벽 풍경 따위에는 아무 관심이 없는 딱 8살 9살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홀슈밴드는 별도 입장료 없이 주차장 이용료만 차량당 $10이 부과됩니다. 여름에는 일출 전부터 방문객이 몰리므로 이른 오전 방문을 권장하며, 겨울에도 전망대 앞에서 사진을 찍기 위한 줄이 이어질 정도로 방문객이 많았습니다.

페이지 베이스캠프 방식 — 그랜드서클 여행자에게 추천하는 이유
그랜드서클(Grand Circle)은 유타 주와 애리조나 주에 걸쳐 자이언, 브라이스캐니언, 캐피톨리프, 아치스, 캐니언랜즈, 모뉴먼트밸리, 앤털로프 캐니언, 홀슈밴드, 그랜드캐니언을 아우르는 광대한 국립공원 루트입니다. 캠핑카 여행이라면 각 공원마다 캠핑장을 옮겨 다니는 방법도 있지만, 겨울철에는 국립공원 캠핑장 대부분이 Full Hook-up을 제공하지 않거나 폐쇄된 경우가 많습니다. 저희처럼 페이지를 베이스캠프로 삼고 매일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방식은 짐을 매번 정리하지 않아도 되고, 안정적인 캠핑 환경을 유지하면서 주요 국립공원을 효율적으로 돌 수 있어 겨울철 그랜드서클 여행자에게 특히 유용한 방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