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저희 가족은 미국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다섯 식구, 캐리어 다섯 개, 그리고 52일짜리 대륙횡단 일정표 한 장. 무모해 보일 수 있지만, 이 여행에는 꽤 구체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여행의 출발점 — 육아휴직과 육아퇴직 제도
저와 남편은 둘 다 은행원입니다. 금융권 특성상 육아휴직 제도가 비교적 잘 갖춰진 편인데, 저희 회사의 경우 여직원은 자녀 한 명당 최대 2년, 남직원도 동일하게 2년의 육아휴직이 가능합니다. 최근 정부의 저출산 대응 정책과 맞물려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이 높아지는 추세인데, 실제로 저희 회사에서도 제도적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2025년부터는 조건부 육아퇴직 제도가 새로 시행됐습니다. 퇴직 후 3년 이내에 원직장으로 복귀할 수 있는 조건을 보장받고 퇴직하는 형태입니다. 일반 퇴직과 달리 고용 관계의 연속성을 일부 유지하면서 장기 휴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육아와 커리어 사이에서 고민하는 직장인들에게 의미 있는 선택지가 될 수 있습니다.
남편이 육아휴직 중인 시점에 제가 육아퇴직을 신청했고, 덕분에 두 부부가 동시에 약 1년간 자유롭게 시간을 쓸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습니다.

왜 하필 미국 대륙횡단이었나
처음에는 반농담처럼 꺼낸 이야기였습니다. "이참에 미국 대륙횡단이나 해볼까?" 그런데 말을 꺼내고 나니 자꾸 생각이 났습니다. 1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면서 육아까지 병행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일상이 무뎌진 느낌이 있었습니다. 몸이 힘든 것보다 무기력함이 더 컸던 시기였습니다.
아이들 나이도 마침 여행하기 좋은 시점이었습니다. 당시 7살, 8살, 11살로, 장거리 이동을 소화할 수 있고 경험을 기억에 담을 수 있는 나이였습니다. 유아기와 달리 어느 정도 체력과 이해력이 갖춰지는 이 시기가, 가족 여행의 황금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두 조건이 동시에 맞아떨어지는 때가 지금이 아니면 언제일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농담이 계획이 됐습니다.
왜 캠핑카였나 — 현실적인 이유
숙소 방식을 고민할 때 가장 먼저 따져본 건 비용이었습니다. 5인 가족 기준으로 미국 호텔에 52일간 묵는다면, 저가 숙소 기준으로도 1박 150~200달러를 가정했을 때 숙박비만 8,000달러(약 1,000만 원) 이상이 됩니다. 캠핑카 렌트는 장기 이용 시 일 단위 비용이 낮아지고, 식비도 직접 조리로 크게 절감됩니다.
비용 외에도, 저희 가족이 평소 카라반을 직접 소유하고 국내 여행을 즐겨 다녔다는 점이 컸습니다. 좁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것, 캠핑장마다 다른 환경에 적응하는 것 — 이미 익숙한 방식이었기 때문에 미국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준비에만 6개월 — 만만하지 않은 사전 작업
막상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니 막막한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캠핑카 렌트 업체 비교, 미국 캠핑장 예약 시스템, 국립공원 입장 예약, 자동차 보험 선택까지 — 국내 여행과는 전혀 다른 구조였습니다.
특히 미국 캠핑장은 연방 국립공원 내 캠핑장(Recreation.gov를 통해 예약)과 주립공원, 민간 캠핑장(KOA 등)으로 나뉘며, 인기 캠핑장은 6개월 전부터 예약이 마감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합니다. 원하는 날짜와 장소를 맞추기 위해 일정 조율과 예약을 반복하는 데만 수개월이 걸렸습니다.
비행기 예약부터 캠핑장 예약까지 준비 기간이 총 6개월. 그렇게 2025년 1월 8일, 저희 가족의 52일 미국 대륙횡단이 시작됐습니다.
이 블로그를 시작하는 이유
당시 저처럼 장기 캠핑카 여행을 계획하는 분들을 위한 실질적인 정보가 많지 않았습니다. 카페나 블로그를 뒤져봐도 단기 여행 후기가 대부분이었고, 30곳 이상의 캠핑장을 직접 사용하며 겪은 구체적인 정보는 찾기 어려웠습니다.
앞으로 이 시리즈에서는 캠핑카 렌트 방법, 미국 캠핑장 예약 시스템, 국립공원별 관람 팁, 일별 여행 루트, 아이들과 함께하는 활동까지 —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정보를 순서대로 정리해 나갈 예정입니다.